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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일./책 영화/ review

Balance (1989)

Balance 감독 Christoph Lauenstein (독일)

http://www.viddler.com/explore/Ms_Valerie/videos/229/


회색 구름이 가득 낀 공중은 매섭도록 차가워 보인다. 그 위에 서있는 다섯 명의 사람은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다. 공중에 떠있는 철판에서도 냉기가 느껴진다. 한정된 재화에 대한 인간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냉담한 비극을 7분 속에 담아둔 애니메이션 영화다. 누군가로부터 획득된 재화를 공유하기 보다는, 개인이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다가 누구도 소유하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 뿐만 아니라 고독마저 야기한다.

영화에서 균형이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매커니즘이다. 외부로부터 습득된 지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원리이다. 한 사람이 움직인 만큼 나머지도 같이 움직여야 하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매커니즘에 재화가 등장하면 균형의 성격이 조금 달라진다. 재화가 있기 전에는 조화롭게 한 발짝씩 내딛는 것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충분했다. 반면, 재화가 생긴 후에는 한 사람이 재화를 욕심내면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재화와 가장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균형은 사람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그들과 재화의 거리를 조정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이내 매커니즘을 역(逆) 이용해서 재화를 욕심낸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다가서보지만 균형이 이를 막는다. 잠시 궁리를 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뒷걸음을 치면서 재화가 자신에게 쓸려오게 하는 것이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움직여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리 없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재화를 가지려 한다. 재화를 낚은 장본인은 당황스럽지만 균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한다. 호기심에서 불거져 욕심으로 발전한 이들간의 갈등은 결국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균형에서 나가 떨어지는 파국에 치닫는다. 균형 위에 남은 단 한 명의 생존도 결코해피엔딩이 아니다.

20여 년전의 짤막한 영화가 지금 현실과 닮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부자들에게서 걷어내는 세금이나 복지 비용은 줄이고, 간접세를 올려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신자유주의 현 정부의 모습과 겹친다. 오로지 '가진자'의 욕심에 의해 역학 관계가 형성되고, 균형을 이루려고 이러저리 쫓아다니는 서민들을 기어코 떨어뜨리려고 한다. 결국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영락없이 패배자라는 이름표가 붙고 만다. 이 영화는 불안정 속에서도 조화로웠던 그들 속에 자본의 등장과 빈부의 차이가 만들어낸 욕심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한정된 재화로 효율성을 얻고자 인간이 고안한 매커니즘에 오히려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한, 조남준 화백의 균형


조남준 화백의 이 만화는 공유(共有)와 사유(私有)의 개념에까지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