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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일./책 영화/ review

하녀(2010), 시대착오적 소재로 시대상을 조명하다


<하녀>는 시대착오적인 소재를 끌어와 이 시대상을 조명하려 한다. 요즘 은이(전도연 역)나 병식(윤여정 역)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들에게 '하녀'라는 호칭을 붙이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아줌마'로 불린다. 가끔 기분 좋을 땐 '여사'라는 호칭을 붙여주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녀>라는 제목이 우리에게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 이유를 영화는 두 가지 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훈(이정재 역)과 해라(서우 역)는 평소에 놀라울 정도로 하녀를 하녀 대하듯 하지 않는다. 애봐주는 사람, 밥해주는 '중요한 사람'으로 존중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친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은 하녀 병식은 철저하게 스스로를 하녀로서 인식하고 행동한다. '아더메치'한 집의 주인의 하녀로서 같은 처지의 하녀보다는 주인의 편을 들어줄 정도로 이미 완전히 하녀로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는 나미를 통해 주인들의 친절함이 병식을 하녀다운 하녀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미는 자신의 친절함이 아빠로부터 배운 것이고, 그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기 한다. 상대방을 높여주는 건 결국 자기가 높아지는 격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들의 속내는 파국에 치닫을 수록 조금씩 드러난다. 하녀들을 일컬어 '그깟 여자', '근본 없는 것들'이라고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진 상류층은 결코 자신들이 상류층에 속해 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류층을 하류층으로 대하지 않는다. 즉 세상이 계급으로 나누어진다는 것 자체를 뻔뻔할 정도로 부정한다. 반면에 하류층에 속한 사람은 스스로 상류층의 하녀로서 종속적인 관계에 집어 넣는다. 보이지 않는 계급은 이런 행태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에 의해 계급이 나눠진다고 말하고 싶은가? 너무나 당연히 '돈'이다. 은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의 하녀다. 훈과 해라의 하녀인 것은 물론 나미의 하녀이고, 심지어 병식의 하녀이기도 하다. 은이는 해라의 속옷을 빨고, 훈의 성적인 대용품이 되고, 나미의 보모이고, 또 병식의 커피를 뽑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하녀가 아닌 사람이 바로 은이다. 은이는 훈과 관계를 맩은 후, 보통 때보다 진한 화장으로 훈에게 다가간다. 반면에 훈은 고액의 수표로서 은이에게 보답한다. 은이는 자기 뱃속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 많은 돈이 들 것을 알면서도 키울 것이라고 결심하지만, 해라와 해라의 엄마는 억대의 돈을 주며 그 아이를 없애라고 한다. 은이는 병식을 의지하지만, 병식은 은이의 임신 사실을 해라의 엄마에게 일러바치면서 자신의 몫을 챙긴다.

이런 그녀는 영화 속에서 '백치'라고 일컬어진다. 순진하고, 맹하고, 딴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 자신도 모르게 '돈의 하녀'가 되어버린 그들에게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여자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받지 못한 그녀의 말로는 자살이다. 복수를 위한 자살. 하지만 복수로서 의미가 전혀 없다. 그저 쓸쓸한 죽음일 뿐이다. 훈과 해라는 여전히 여러 명의 하녀를 부리면서 딸에게 호화스러운 생일 선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오바스럽게, 더 사치스럽게 말이다. 단지 나미의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서 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만을 걸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는 두 가지의 죽음이 존재한다. 처음에 번화가의 한 복판에서 뛰어내린 젊은 여자의 자살과 마지막에 은이의 복수를 위한 자살이다. 이 두 가지의 죽음은 모두 사람들의 관심을 그다지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두 여인의 죽음을 관망한다. 첫 장면의 죽음에도 사람들이 놀라긴 하지만, 여전히 자기 벌고 살기 바빠서 죽음은 모두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버리고, 그저 하얗게 그린 자국만이 죽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마지막 은이의 죽음 역시, 그저 누군가 사라진 것일 뿐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버리고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난다. 쓸쓸한 죽음, 그것은 더 이상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내가 살아있으면 되는 것이고 살아있는 날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그깟일에 관심 갖는 일은 시간 낭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