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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일./책 영화/ review

신도 버린 사람들(Untouchables)

신도 버린 사람들








신도 버린 사람들
(Untouchables)
- 나렌드라 자다브 / 강수정 역

예전부터 서점에 들릴 때마다 자꾸만 내 눈길을 묶어두는 책이 있었다. 인도 여자아이가 옆눈물 고인듯한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무게감이 느껴지는 표지를 가진 책이었다. 책 제목을 봐도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나도 모르는 이끌림으로 몇 장씩 읽다가 두고 온 책인데 얼마전에 연을 쫓는 아이를 다 읽고서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처음에 소설인지, 실화인지 어리둥절해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작가 소개를 보면 작가의 실화인 것 같았으나, 이야기 속에는 작가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을 스스로 알아내는 데 희열을 느끼곤 하기 때문에 그냥 어리둥절한 채로 읽어 나갔다. 마지막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게 된 후 내가 받은 감동이란. 난 어쩌면 이 책에서 그 부분이 가장 감동이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부모님의 시각에서 읽을 수 있었던게 나에겐 너무 큰 임팩트를 가져왔다.

절대 인도의 전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회, 문화 생활도 살짝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달리트, 즉 불가촉천민의 관점의 인도 이야기이다. 그래서 새롭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감동적인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에게 큰 메세지를 주는 책이다. 나는 아무리 감동을 받아도 불가촉천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을 위해 일한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자신들이 직접 변화를 만들어 낸 이야기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풀리지 않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에 맞닥들였을 때의 내 모습에 자극을 주는 그런 책이다.


3대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힘
마하르 신분을 극복하고 높은 신분으로서도 이루기 힘든 일들을 성취한 아들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아버지, 다무이다. 손녀 딸이 이제 더 이상 마하르 신분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러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도록 만든 것도 바로 할아버지, 다무이다. 거지 행세를 하며 구걸이나 하러 다녀야만 했던,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자다브 가문에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다무가 분명하다. 다무는 바바사헤브의 영향을 받았다. 바바사헤브가 자녀의 교육을 강조했고, 권리를 위해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 투쟁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 십만명이 집회에 참여를 했었는데, 자다브의 가정에 특별히 이런 성공적인 결과가 있음은 다무에게 특별한 힘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들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게 바로 실천 의지가 가지는 힘이다. 다무는 무식하게 보일 정도로 바바사헤브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바바사헤브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불교로 개종하려고 소누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시위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삶에 돌아와서도 가르침대로 행동하려고 애를 썼다. 부인에게도 배울 권리가 있음을 알려줬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계몽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다무가 제일 열심히 실천하려고 노력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즉 그는 자기가 받은 자극을 그냥 넘기지 않고 몸으로 머리로 실천하려고 애쓴 인물인 것이다. 우리도 자극과 도전을 받은 기회는 여러 번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변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무는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고, 그리고 사회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실천을 했다.

다무가 어떤 비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이렇게 실천할 수 있게 만든 것은 그의 지조이다. 다무는 어머니가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부인에게 글을 가르친다고, 가문의 전통을 거역했다고, 온갖 비난을 해도 포기하지 않고 신조를 지켜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도 오죽 답답했으랴. 다무의 이야기를 보면, 다무도 충분히 갈등했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무는 끝까지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절대 게을리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해져 갔다. 다무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나오는 결과를 기다릴줄 아는 인내가 있었던 것이다. 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헤어나오기 굴레인데, 그것을 감히 해낼 생각을 한 것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좋은 기록이 남는 사람은, 즉 죽은 뒤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사람에게는 대개 이런 지조가 있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의 삶은 지조로 인해 비참했을지라도 하늘은 그들의 지조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지조는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화려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이렇듯 가장 근본적이고 단순한 가치에 근거한다. 이렇게 근본적이고 단순한 힘이 수 십명, 수 백명, 혹은 수 천만명에게 자극과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세상을 변화시킨 힘은 사랑이었다면, 다무가 세상을 변화시킨 힘은 실천의지와 지조인 것이다.


부부로서의 다무와 소누, 부모로서의 다무와 소누
다무와 소누는 부부로서도, 부모로서도 결코 완벽한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부부로서 서로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고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보여줘서는 안되는 부분까지 보여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것을 지켰기 때문에 이들의 부족함 가운데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를 잊고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상황이든 지켰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사랑에서 믿음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믿음이 없는 사랑은 깨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겉으로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서로를 굳게 믿고 있었다. 상대방이 결정한 것에 대해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항상 믿음은 존재해왔던 것이다.

부모로서 다무와 소누의 가장 큰 공헌은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치기보다 삶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너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너는 공부를 해야한다"라고 일러주는 것은 결코 올바른 가르침이 아니다. 다무와 소누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기 이전에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 보여주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줬고, 전통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결국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교육 방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