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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일./책 영화/ review

맨 어바웃 타운 (Man about Town)

MAN ABOUT TOWN

맨 어바웃 타운 (Man About Town) _ 2009.06.18 개봉
마이크 바인더 감독 / 벤 에플렉, 레베카 로미즌




질긴 고무 풍선 속에 들어있는 나.
뚫어보려 몸부림을 쳐보지만, 별 수가 없다.
뾰족한 무언가로 찌르면 그만이지만, 펑 터지는 소리가 겁나 두 귀를 막아버리기 때문에 매 번 실패할 뿐이다.
 
그 속에선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다.
외로워 하며, 풍선으로 살짝 비치는 바깥 세상을 동경할 뿐.
세상 공기와 맞닿아 보지도 못한 채
시간이 지날수록 쭈글어드는 풍선 속에 갇혀 있게 된다.
게다가 갈수록 그 풍선은 잘 터지지도 않는다.
 
 
이런 인생의 비극을 피하고,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풍선 속에 숨는 일을 그만하고, 솔직하게 내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나를 숨기는 것을 계속하다보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을 알 수 없게 된다.
 
때로는 그것이 가슴에 상처를 줄까봐 겁이 날지라도.
실패가 우려된다 하더라도.
펑 터지는 소리에 대한 두려움도, 펑 터지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6월 12일, 서울 극장 2관에서 시사회가 있었다.
동생 덕에 생긴 공짜 표로 그냥 보러 간 것이었지만, 이상스럽게도 요즘의 나에게 필요한 영화였다.
잭이 일기 쓰기 수업에 들어간 장면 부터 그럴 것 같다는 묘한 감이 와서 가슴이 찌릿했다.

그냥 웃고 넘기는 영화를 평소에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 내 머리가 너무 뜨거운 것 같아 그런 영화 한 편과 두 시간 쯤 보내며 머리를 식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시작되기 전에 이 영화가 설사 코미디 로맨스 물에 그치지 않는다 할지라도 후회 없이 보기로 생각했었는데 (원래, 영화나 연극이나, 예고편과광고용 멘트를 미리 보는 것을 싫어해서 이번에도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갔다.) 그 장면이 나올 때부터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왠지, 요즘 내 생각에 실마리를 제공할 것만 같았다.


요즘의 내가 어떻냐고.
스물 넷, 지금은 휴학 중이지만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있어 내 미래를 설계하는 중. 
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등의 어처구니 없는 고민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지금의 나에겐 어처구니 없는 것이 아닌,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잭에게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다. 든든한 직장 동료들이 있다. 호화스러운 집이 있고 잘나가는 회사의 사장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단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 성공은 결코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의 아름다운 부인은 자신의 고객과 바람이 나고, 그의 든든한 동료들은 회사의 손실이 두려워 잭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그의 호화스러운 집에도 침투자가 있기 마련이고, 그의 잘나가는 회사에도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치명적인 비리가 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그의 일기장에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유능하신(?) 박사님의 강의에 따라.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일기장을 채워나가다가 결국엔 자신을 발견한다.
충돌이 있을 때마다, 부딪히기보다는 늘 피해버리는 자신을.
어렸을 적 형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기고 덮어버린 자신의 분노, 그 형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죄책감 마저도 잊으려 했고, 자신에게 폭행을 가한 사람에 대해서도 화내지 못하고 그의 집 앞에서 돌아와버리고, 바람 핀 부인과 부딪혀 싸우기 보다는 자신만의 벽을 쌓아 부인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거절하는 자신의 고객에게도 별 수를 쓰지도 못하고 포기해가고만 있는 자신을.

그는 성공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참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어렸을 적, 뚱보였던 그는 그것이 성공을 위한 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잃을까봐 두려운 것에 대해서는 직면하지 않고 외면하고 적당히 자기 조절하면서 사는 것 말이다. 물론, 그 방법이 풍요로운 생활을 갖게 된 것과 사장이라는 직책에 오르는 것에는 아주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그것들이 모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잭은 자신을 잃어버렸고, 결국엔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일에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면, 나는 결국 사라지게 된다. 사람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자제한다면, 세상에서 아주 희미한 존재가 되어버릴 뿐 아니라  나 조차도 나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오는 길에 내 뒤에 한 커플이 대화를 듣게 되었다. 중간에 지루했기 때문에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포스터를 봤을 때, '여름 최대 스캔들' 따위의 캐치프레이즈로 영화를 설명하고 있다.

글쎄,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내가 대중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 관련 전문가도 아니기에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저 '지루한 영화'라고, 혹은 포스터의 문구 정도로 설명될만큼 가벼운 영화는 아닌 것 같다.